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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간을 잡아두는 방법

임종직전 2025. 3. 23. 01:32

 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. 평소에는 내 삶에서 영영 지워진 것처럼 희미하다가도 눈만 감으면 생생하게 살아나 내 곁을 맴돈다.

 

 죄책감이나 아쉬움이 그들을 불러오기도 했고, 증오나 불안, 그리고 질투나 의심이 그들을 데려오기도 했다. 하지만 그들을 가장 강력하고 정확하게 이끌어오는 것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이었다.

 

 눈을 뜨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세 사라지지만 그들은 조금 더 오래도록 살아남아 눈에 아른거린다. 그러다 지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한없이 희미해진다.

 그들은 내 삶에서 소멸되지 않는다.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흔적을 남기고 일상 밖으로 잠시 피신한다. 나와는 연관된 기억이 없는 척 위장하며 주변을 부유한다.

 

 추억이라는 바람이 불고,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력하게 휩쓸려 갈 때가 있다. 그럴 때 눈을 감는다는 것은 기억의 멱살을 잡고 내 앞으로 끌고 오는 것과도 같다.

 

 그리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다. 가끔은 이 세상 너머에 살아가는 것처럼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그리움에 파묻혀 그들과 마주하게 된다.

 그들은 기약도 없이 마음대로 찾아왔다가 내킬 때 다시 떠난다. 그래서 마중도 없고 배웅도 없다.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. 가끔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그리움인 것 같다.